개인적인 기록

가진자에 대한 적개심

Jerry_이정훈 2023. 5. 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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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태어났다. 어머니는 매일 뼈를 갈아 넣을만큼 부지런했다. 4남매에 막내 삼촌까지 7명이 방한칸을 미닫이 문으로 나눈 집에 살았다. 네집이 화장실 하나를 사용한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다. 그런 집에서 서울로 대학교 갈 때까지 살았다. 아파트 사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웬지 모를 반항심이 있었다.

 

대학에 가고 '다현사(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류의 사회과학 책을 읽고 종로를 뛰어 다니며 데모를 했다. 95학번이라 아직 운동권 문화가 남아 있었다. 능력없이 부지런하기만 한 부모에 대한 원망은 사회 구조를 알면서 사라졌다. 우리 집이 가난한 건 능력이나 성실함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착취에 의한 사회 구조의 문제란 걸 알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아무리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도 대다수의 노동자는 못살 수 밖에 없다. 

 

특히 우리 나라처럼 일제 친일파의 기득권이 남아 있는 사회는 상위 계층이 특권과 반칙으로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에 그들에 대한 적개심이 더 심했다. 그들은 자신의 부와 안녕만을 위하여 일본에 충성하고 일본 순사를 이용하여 그들만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을 굴복시켰다. 군사 독재 시절의 고문도 윤석열의 압수 수색도 연장 선상이다. 그들은 아마 일제 식민지 시절이 태평성대라 생각할것이다. '모진 돌이 정 맞는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지키려면 그들에게 콩고물이라도 구걸하며 그저 입 다물고 살기를 강요당한다. 조선 건국 이 후 600년이나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가르침이다.

 

나름 개똥철학도 갖추니 적개심은 공고했다. 회사에 들어오니 회사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팀장은 그저 상무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밑에 애들을 갈아넣었다. 밑에 애들이 야근에, 갑질을 당하건 말건 그저 주간 보고서 한줄에 그럴싸한 실적을 추가하기 위해 회의 시간에 막말을 해댔다. 기득권에 대한 적개심은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일상 생활에서 가능하면 윗사람에게 까칠하게 대했고 아랫사람, 업체 분들에게 항상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일상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당연했다. 가진자들이라고 다 악랄하지 않고 못가진자 역시 게으르고 능력이 없는데 세상에 대한 불만만 가득한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가진자, 못가진자를 나누기에는 100만원 가진 사람, 100억 가진 사람 등 그 층위가 너무 다양했다. 무엇보다 사람을 판단하는 수많은 요소가 있는데 그걸 단순히 '돈'으로 재단하는 건 인간 존제 자체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나역시 내 아이에게 유학을 비롯한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아빠'와 내 아이가 사는 세상은 좀 더 사람사는 세상이 되도록 '양심과 자존심을 지키는 40대 후반의 K-직장인 아빠'에서 바쁘게 오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꼭 필요하니 어느정도 조직에 충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자의 착취 모순을 극복하는 사회주의도 단순히 상상에만 존재하는 사회는 아니다. 오늘 내가 일상 생활인 회사와 집에서 행동하면 적어도 나와 가까운 삶에서는 먼 이야기도 아니다.

 

나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일까 고민하며 행동한다. 나는 어디까지 이상적으로 살수있을까? 직업인으로 양심과 자존심을 지키고 나의 능력도 발휘하는 직장인.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로 세상 불평만 하며 실 생활에서는 작은 노력도 하지 않는 허무주의는 싫다. 물론 골프나 치며 윗 사람에게 잘 보이면서 밑에 애들 갈구기만 하는 삶은 혐오하고. 부동산 시류에 맞춰 앞으로 돈이 되는 집을 사는 것은 결국 집값을 올리는 것이고 올라간 집값에 대한 피해는 나같은 서민이 받는거라 생각해 무리해서 대출끼고 집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실', '호갱노노'를 들락날락하며 아파트 실거래를 외우고 있다. 집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되어 아파트사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단독 주택, 타운 하우스를 5년 넘게 알아보았다. 하지만 그래서 그게 '돈이 되?', '나중에 팔 수 있어'라는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해 다시 아파트 실거래를 보고있다. 일상의 많은 행위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친구들처럼 나도 30대는 주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으나 40대가 되며 주식, 부동산 사이트를 들락날락한다. 

 

와이프는 항상 입진보, 강남진보라고 비아냥 대지만 나는 양 극단의 중간 어디쯤에서 행동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아이가 나와 똑같이 산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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