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기록

40대 중반 아재의 스타트업 1년 생존기

Jerry_이정훈 2023. 4. 1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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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22년 2월에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지금이 4월이니 1년을 조금넘겼다. 2003년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20년 동안 IT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동안 대기업, 외국계, 중소 기업을 다녔는데 회사 문화는 IT답지 못했다. 사원, 대리, 과/차장, 임원으로 나뉘고 저마다 할일이 달랐다. 사장이 술먹자 그러면 다들 재미있어하며 술을 마셨다. 까라면 까는 군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타트업은 처음이다. 풀재택을 하고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1년이 지난 시점에 돌아보니 나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그동안은 회사 욕을 많이 했다. 약간 반골, 희생자 마인드였다. 내가 단지 사장과 술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팀장이 못되고 어떤 사람은 팀장을 계속 유지한다 생각했다. 그래서 팀원들도 가끔 술이나 먹지 일다운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했다.

 

이제 회사 욕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회사 욕하면서 가려져 있던 나의 무능력에 마주하게 된다. 회사는 충분히 일을 하게 해주는데 내가 못해서 못하는 일들이 많다. 윗사람이 이상한 일만 시킨다고 욕했는데 여기에선 한참 후배지만 유능한 동료를 따라가지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나는 5년차에도 바닥에서 케이블이나 까고 있었는데 저친구는 벌써 저걸하네 하면서 그저 나의 물경력을 탓한다.

 

업무하면서 윈도우가 아닌 맥을 처음 썼다. 엔지니어지만 업무 시간의 반 이상은 파워포인트로 문서를 만들었다. 내가 이걸 왜 만드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문서를 만드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 맥에 오피스 365 자체가 없다. 아마도 다섯번 이내로 발표 자료를 만들었고 그것도 구글 슬라이드로 만들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 필요없는 이상한 애니메이션 효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억지로 비유를 한다는지 적당한 이미지를 찾아 시간을 찾는다는지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필요한 내용은 대부분 코드로 공유했다.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윗사람을 위한 문서를 만들지 않으니 불필요한 문서 작업에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스스로 대견하다. 20년을 굴뚝 회사다니면서 쩌들었는데 그래도 잘 적응했다. 이전 회사 후배랑 술한잔하면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이제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엄청 힘들다. 이제 핑계가 없다. 일을 못하는 건 내가 못해서지 회사가 안 받쳐주어서가 아니다. 노예가 시민이 되었는데, 능력이 없어 참 쉽지 않다. 일은 그저 하는 척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 진짜 일을 해야 한다. 어렵다. 하루 업무를 마치면 오늘 나는 이만큼 성장했다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예상만큼 나오지 않는 퍼포먼스에 당황스럽다. 끊임없이 변화하는게 IT라 그속에 도태하지 않으려면 매일 배워야 한다. 연차가 20년이 넘는데 여전히 ‘Hello World’만 치는 나에게 실망이 마르지 않는다.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라는 강박에 쌓였는데 그러지 못한 나를 마주보기가 참 힘들다. 무언가가 안되는 날에는 한숨만 쉬고 아무것도 안하는 날들도 있다. 재택이라 업무 시간인데도 딴짓을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변신, 적응을 참 많이 했다. 엔지니어만 하다 고객 만나 미팅하고 문서를 만드는 Pre-Sales도 했고 대기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외국계도 다녔고. 업체 분들을 다루던 갑에서 을이 되어 내가 갑일때는 안 그랬는데 하면서 갑을 욕하기도 하고. 

 

이제 가장 어려운 노예에서 시민이 되어 스스로 실력을 쌓아야 한다. 돌아보면 1년은 짧은 시간이다. 내 실력이 1년만에 내가 원하는 만큼 쌓일수 없다. 아마도 은퇴하는 순간까지 영원히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성에 차지 않지만 방법이 없기에 길게보고 매일 배운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쌓아갈 뿐이다. IT 영역은 너무 넓고 그 변화도 빠르기에 모든 걸 잘할수가 없다. 물론 인터넷에는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부끄러움은 끝이 없다. 그렇다고 남들을 쫓으면 나만 힘들다.

 

그래도 나는 아직 할일이 많다. 40대 중반을 넘기고 있지만 친구들처럼 회사 간판을 떼면 아무 할일이 없는 관리자가 아니라 내 실력으로 여전히 갈 회사는 많다고 생각한다. 치기 싫은 골프를 어쩔 수 없이 쳐야 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 비교만 하지 않으면 스타트업 연봉도 나쁘지 않다. 진짜 일을 잘하는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야한다. 좀 더 자신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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