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기록

대기업에 산다.

Jerry_이정훈 2023. 4. 2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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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같이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서 3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형은 대기업에 25년 넘게 다닌다. 25년 한해도 빠지지 않고 토, 일요일 중 하루는 출근을 한다. 휴가도 5일 이상 안쓰고 항상 연말에 휴가 비용을 돌려받는다. 아이 둘 외국어 고등학교 포함 대학교 등록금까지 지원받았다. 운이 좋다고 한다.

 

나는 대기업을 그만두었다. 그때는 그저 회사가 망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재미없었다. 옆자리 과장님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는 회사 생활이었다. 이후 (사회적기업), 외국계, 중소, 스타트업을 다녔다. 이직 잘했다고 생각했던 내 믿음이 형의 연봉 이야기를 듣고 흔들렸다. 야근, 특근, 연차 수당 + 학자금까지 하니 아주 많았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스타트업 IT 개발자 연봉이 초라했다.

 

연고대 아이들은 서울대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서울대 다니는 애들은 의대, 법대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비교에 끝은 없다. 그리고 대개 그 비교의 끝은 돈이다.

 

단단하다고 생각한 내 믿음도 연봉 이야기 듣고 흔들린다. 고등학교 때 아무리 잘 생기고 농구 잘하고 만화 잘 그리고 여자 있어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그저 최고이듯이, 이제는 그저 돈많이 받는 회사가 최고이지 아닌가 싶다. 공부를 잘한편이라 항상 반 등수, 전교 등수를 생각했고 이 정도면 대학교는 어디에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항상 남보다 잘해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지 않았다 싶다. 자연스럽게 회사 역시 등급을 나누었고 나는 어느 정도의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는 레벨을 생각했다. 그런데 스타트업이라 네이버, 카카오에 들어가지 못한 나를 자책하나 싶기도 하다.

 

내 월급으로도 초등학교 2학년 아이 하나를 키우고 와이프와 즐겁게 살아가기 불편하지 않다. 집은 아직 전세이지만 다행히 집값이 조금 떨어져서 살려고 하면 살 수 있어 크게 불만은 없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형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어서 마음이 불편한가? 친구 이야기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사촌이 땅사면 배 아프듯이 형이라서 축하가 아니라 시기의 마음이 드는걸까? 40대 중반이 넘어서니 이제 내 인생의 기준은 그저 돈이라는 결과로 재단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대학교 때 다행히 책을 읽었다. 나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 아이는 세상이 정해준 공부와 돈이라는 잣대에서 조금 자유롭도록 돕고 싶다. 물론 아직 우리 사회가 하고 싶은 일하고 살면서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는 아니기에 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같이 하겠지만. 

 

감정이라 시원한 해결책이 없다. 그저 평소처럼 달리기를 하고 잠을 많이 잔다. 와이프와 맥주 한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내 마음을 더 들여다 볼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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